국가보훈부는 내년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기존의 인물 중심 독립운동가 대신 사건 중심의 12개 독립운동을 ‘2025년 이달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1992년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보훈부는 모두 501명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공적을 알려왔다.
내년부터는 사건 중심으로 선정하기 위해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22일까지 1개월간 보훈부, 광복회, 독립기념관 등의 누리집을 통한 국민 추천을 접수를 받아 총 121건의 독립운동을 추천받았다.
이후 보훈부와 광복회, 독립기념관, 근현대사 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달의 독립운동 선정위원회’를 열어 달마다 1건씩 모두 12건의 대표 독립운동을 선정했다.
내년에 선정된 월별 ‘이달의 독립운동’을 살펴보면 1월은 ‘국채보상운동’이 선정됐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졌던 1300만 원의 빚을 온 국민이 갚기 위해 전개한 국권회복운동으로, 일본의 탄압으로 중지됐지만 경제적 자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을 보여줬다.
2월은 ‘신간회 창립’이 선정됐다. 신간회는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조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힘을 합쳐 1927년 만든 단체다. 민족운동의 새로운 줄기가 될 조직이라는 의미를 담은 신간회의 회원은 4만여 명으로, 당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단체였다.
3월은 ‘3·1운동’이 선정됐다. 3·1운동은 1919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민족이 함께한 만세운동으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는 원동력이 됐다.
4월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 선정됐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을 계기로 일본 제국의 국권 침탈과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하고 민주공화국을 완성하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수립돼1945년 광복을 이루기까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5월은 ‘근우회 창립’이 선정됐다. 근우회는 1927년 5월 탄생한 전국적인 여성운동조직으로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강령으로 내세우며 여성의 지위 향상을 비롯해 식민 지배 해방을 위한 선전 활동과 계몽운동을 펼쳤다.
6월은 ‘6·10만세 운동’이 선정됐다. 6·10만세 운동은 1926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제2의 3·1운동을 준비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민족독립운동으로 침체된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안겨주며 이후 신간회 창립과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발판이 됐다.
7월은 ‘광복회 조직’이 선정됐다. 광복회는 1915년 7월 대구에서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로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치해 일제와 전쟁을 전개해 독립을 이루려고 했으며, 이를 위해 독립군 양성 및 군자금 모금과 친일 세력 처단, 일제의 금품 수송 탈취 등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8월은 ‘일장기 말소사건’이 선정됐다. 일장기 말소사건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기사를 보도할 당시 가슴에 붙어있던 일장기 마크를 삭제한 사건으로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자 항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9월은 ‘한국광복군 창설’이 선정됐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창설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로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대일 선전포고를 발표하며 항일 투쟁과 자주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10월은 ‘한글날 제정’이 선정됐다.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일본의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해 1926년 11월 4일로 제정한 ‘가갸날’은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었고 광복 후 10월 9일로 날짜를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1월은 ‘광주학생 독립운동’이 선정됐다. 광주학생 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지역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난 전국적 만세운동이다.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하나가 돼 일제의 탄압에 맞선 민족 항일운동으로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이자 일제강점기 최후의 전국적 항일운동이기도 하다.
12월은 ‘13도창의군 결성’이 선정됐다. 13도창의군은 1907년 12월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한 최대 규모의 연합 의병부대로 전국에 퍼져 있던 의병 세력 1만 명을 모아 결성했다. 일제 통감부 격파와 국권 회복을 목표로 한 서울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러한 시도는 이후 항일운동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됐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내년 길고 어두웠던 일제강점기를 지나 온 국민이 광복이라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 지 8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라며 “국권 회복을 위해 풍찬노숙도 마다하지 않고 오로지 자주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애국선열들의 뜻이 결집된 다양한 독립운동을 통해 그 숭고한 독립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