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료수 가격 아는 사람? 난 어릴 때 용돈을 아껴가며 사 마셔서 그런지 아직도 가격이 기억나.”
“저는 음료수 가격은 잘 모르겠고요. 여기 나온 먹방은 봤어요.”
몇몇 직장인들이 전시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년쯤 된 직장인이 가리킨 음료수는 1980년 전후로 출시된 제품이었다. 젊은 청년이 말한 먹방은 2010년대 이후 방영된 프로그램이었다. 이곳 코엑스 ‘푸드위크(FOOD WEEK) 2024’ 정책홍보관에서는 우리나라 식품산업을 시대별로 제품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지난 11월20일부터 23일까지 코엑스 전관(A, B, C, D관)에서는 ‘푸드위크(FOOD WEEK) 2024’가 진행되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코엑스가 함께한 이 행사는 31개국, 1,054개 기업이 참여한 국내 최대규모 식품 전시회로 식품, 디저트, 급식·외식, 푸드테크 등 4개로 구성돼 식품산업이 나아갈 ‘혁신의 미래, 상생의 미래, 긍정의 미래’를 보여줬다. 여느 전시회보다도 규모가 컸던 이 거대한 전시회에서 무엇을 봐야 좋을까? 한참 생각하다 가장 관심있는 식품산업의 미래와 식품과 관련한 정책을 만나보기로 했다.
농식품 정책홍보관
가장 먼저 들린 곳은 A관에 있는 ‘농식품 정책홍보관’이었다. 이곳에서는 1950년부터 현재, 미래의 대한민국 식품산업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앞으로 펼쳐질 미래 식품까지 한자리에서 보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더욱이 배고픔을 달래주던 먹거리가 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게 다가왔다.
식품의 변천사
간단하게 알아보자. 1950년대 우리나라 식품산업은 삼백산업(제분, 제당, 면방직 공업)의 성장과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과자, 조미료를 비롯해 오랜 신문이나 밀가루 포대 모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조금은 생경한 모습에 젊은 세대들은 신기한 듯 인증샷을 찍어댔다.
1980년~2000년대는 식량이란 개념이 식품으로 발전한 시기다. 추억 어린 음료들과 컵라면을 보자, 나 역시 잠시 추억에 빠졌다.
2000년~2020년대 식품은 웰빙, 콘텐츠와 결합해 세계 중심인 ‘K-푸드’로 발전했다. 점차 사람들은 먹거리에 건강을 생각하며 삶의 질을 추구했고 소위 먹방, 쿡방으로 일컫는 각종 음식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더욱이 SNS와 OTT의 붐을 타고 식품은 ‘K-푸드’ 콘텐츠로 변모했다. 불닭볶음면과 짜파구리 등을 비롯한 한식의 인기가 치솟고 한식 미슐랭과 해외 한식 기업이 늘어나며 전 세계 한식 열풍을 몰고 왔다.
이어 미래를 만날 차례다. 여기서 제시한 미래는 로봇과 파인다이닝 이다. 최근 핵개인화, 나노사회로 부각된 트렌드는 인공지능과 바이오기술 등 푸드테크 기술을 한층 발전시켰다. 이미 시중에는 AI로 개발한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들이 선보이고 있고 1g 단위 취향까지 반영한 커피 로봇과 소비자의 건강상태와 기분을 고려한 조리 로봇이 개인의 취향을 맞춰주고 있다. 이날 전시장에서는 스마트팜 스타트업인 팜에이트와 함께 로닉의 AI 로봇이 만드는 샐러드를 체험해볼 수 있었다.
키오스크에서 칼로리와 영양소를 보고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그릇이 컨테이너 위를 지나가는 동안 여러 로봇팔이 소비자가 선택한 샐러드 재료를 넣어준다. 소비자가 원하는 재료는 물론 건강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 성분까지 스스로 계산해 알려주기도 한다. 재미있는 광경에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찍었다. 난 순식간에 만들어진 샐러드를 받아들고 근처 테이블에 앉았다.
“어머니 커피 드시죠? 설탕은 얼마나 넣을까요?”
깔끔한 테이블에는 주문 가능한 QR코드 하나만 적혀 있었다. 앞에 앉은 청년이 QR코드를 찍어 어르신 몫까지 주문했다. 이젠 그다지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왠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삼백산업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 같지 않은데 벌써 로봇이 개개인 영양까지 고려해주는 시대가 되었구나’. 그래도 로봇이 만든 샐러드를 먹는 순간, 피로가 풀렸다.
“지금까지는 로봇이 조리의 일부분으로 음식을 만들었는데요. 이 모듈형 조리 로봇은 내부에 여러 센서를 탑재해 결합한 방식이에요. 음식 특성에 따라 모듈을 조합해 쓸 수 있거든요. 간단한 샐러드 뿐만 아니라 밀키트로 나온 음식이라면 어떤 것이든 가능하죠.”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로닉의 장희 이사가 말했다.
실제 오는 12월 말에는 해장국 식당에서 이 로봇이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주문, 계산, 조리, 포장까지 모든 걸 로봇이 (로닉 AI 로봇 셰프 큐브)하게 되는 셈이다.
“이 로봇이 상용화되면 인력관리면이나 재고관리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특히 프랜차이즈에서 보면 가장 효율적인 매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장 이사가 로봇의 장점에 관해 덧붙였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소·돼지 고기 원산지 판별키트
“고기 원산지를 알 수 있다고요?”
“네 직접 체험해보실 수 있어요. 우리가 그냥 보면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선뜻 알기 어렵잖아요.”
이제 명절이면 특히 한우라고 속이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부스에는 국내산 소·돼지 고기 원산지 과학기술로 판별하는 키트를 볼 수 있었다. 두 기술 모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자체 연구로 개발한 성과라 더더욱 놀라웠다. 먼저 한우의 판별은 소의 유전자(DNA)를 분석해 15분 만에 판별가능하다. 한우에는 특이한 유전자가 있어 그 유전자를 증폭시켜 분석한단다. 이 연구가 개발되기 전에는 전문 실험실에서 고가장비를 통해 3일이나 소요됐단다. 이제 작은 기구와 스마트폰만으로 15 분만에 감별,단속현장에서 바로 판별할 수 있게 됐다.
“돼지는 소와 달라요. 국내산 돼지와 외국산 돼지는 백신 유무로 알 수 있어요. 국내산은 돼지열병 백신접종이 의무라서 돼지 열병 항체가 있거든요.”
바로 옆에서는 돼지고기를 잘라 ‘원산지판별 검정키트’로 5분 안에 구분하는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5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인지 여러 사람이 결과를 기다리며 다음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코로나 검사키트 같은 ‘원산지판별 검정키트’를 받는다. 여기에 쌀 한톨 크기로 수입 혹은 국산 돼지고기를 잘라 떼어 용액에 넣고 잘 섞은 뒤 키트에 3방울을 떨어뜨린다. 나는 외국산을 잘라 넣었다.
5분쯤 지나자 정확히 1줄이 나왔다. 돼지 열병 항체가 없다는 소리다(외국산). 옆에서 지켜 보던 남성이 “정확하네요” 하고 말했다.
지리적표시 (PGI)
보통 가평의 먹거리하면 잣, 이천하면 쌀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고흥은?
농수산물 및 그 가공품의 품질, 특성이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그 지역에서 생산제조, 가공했다는 표시를 하게 된다. 이 표시가 지리적표시다. 지리적표시는 제도를 부여받은 곳에서 포장에 인쇄하거나 스티커로 표시할 수 있다. 이런 지리적표시는 왜 중요할까.
“일단 원산지가 확실하잖아요. 그 지역에서 자란 지리적 특성이 들어간 우수한 농산물이고요. 그래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요. 또 우리 농가의 소득보전에도 기여하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선영준 주무관이 말했다. 그의 뒤편에는 여러 가지 지리적표시 안심 먹거리가 놓여 있었다. 지리적표시라는 명칭은 몰랐을지 모르지만 각 식품은 우리가 많이 들어와 익숙했다. 나주배나 보성녹차 같은. 선 주무관은 이 제도가 1999년 도입돼 농산물, 임산물, 수산물 194여 개 품목이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철저하게 사후관리를 하고 있어요. 인증이 아니라 등록하는 제도라서 품질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더욱이 지리적표시 제도는 장점이 많다. 예로 광양매실이라고 치자. 어느 한 곳이 아닌 광양의 모든 매실농가(인증에 가입하는 농가)가 유명해지는 건 물론, 광양지역도 홍보된다. 더욱이 이 지역식품이 콘텐츠와 만나면 전 세계 관광효과까지 낳는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도 많아진다. 물론 그 기반에는 철저한 관리, 신뢰가 요구된다.
수입축산물이력관리제(수입축산물 이력관리시스템(미트와치))
“수입산 고기 구매하실 때 이력번호 확인하시나요? 누리집이나 앱을 통해서 고기의 수입일자나 수출국 등을 알아볼 수 있어요.”
늘 명절을 앞두고 수입축산물 이력관리제를 특별단속한다는 뉴스를 접한다. 그렇지만 특별히 관심을 두진 않았다. 전시장에는 국립농산물검역센터에서 나와 수입축산물이력관리제를 소개하고 있었다. 수입축산물이력관리제가 뭘까. 평소 세밀히 보진 않았지만 고기팩에 붙은 이력번호 12자리 숫자 코드를 앱이나 누리집을 통해 스캔해보니 관련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이 제도는 2010년 소고기를 시작으로 2018년 수입돼지고기까지 대상품목을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유통단계별 거래 내역을 기록, 관리해 축산물 안전성을 확보하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도입됐다. 특히 요즘은 직접 마트가 아닌 온라인으로 구매가 활발해져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수입산 고기를 구매하면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수입축산물이력관리제를 알지 못했었다. 앞으로 수입산 고기를 구매할 때 바코드를 보고 이력번호를 눌러보게 될 듯싶다.
두 어르신이 말하고 있는 부스에서는 고령친화식품단계를 소개하고 있었다. 고령친화식품단계라는 제도는 내겐 좀 생소했다. 고령친화식품단계는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에서 21년부터 운영해 1~3단계까지 단계별로 구성해 등급을 지정한다. 현재는 한 200여개 제품이 지정을 받았다고. 1단계는 치아로 섭취가능하고 2단계는 잇몸섭취로 가능하며, 3단계는 혀로 섭취할 수 있다. 대부분 소스류가 3단계에 속한다고 했다. 단계별로 제품이나 식품 모형이 전시돼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제품에는 마크가 붙어 있으나 의무사항은 아니며 또 소비자 판매용과 시설 납품용을 구분해 지정하고 있다.
푸드 위크 답게 먹을 것, 구경할 것도 많았다. 취재를 위해 배불리 먹고 온 게 후회가 될 만큼. 다른 참관객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용인에서 친구와 함께 온 정하나 씨(25)는 최근 와인에 관심이 많아져 곁들여 먹을 만한게 있을까 싶어 왔다고 했다. B관에 먼저 갔다가 이곳으로 막 왔다고. 육포를 시식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며 꼭 먹어보라고 하며 말해줬다.
전시회를 담당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김민선 부장은 “1950년대 식품산업 시작에서부터 최근 푸드테크 까지를 한 자리에서 소개하고 싶었다. 특히 발전된 로봇기술과 함께 앞으로의 푸드테크를 체험하고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라며 “농식품부는 푸드테크 산업을 육성하며 기술에만 포커스를 두는 게 아니라 부족한 인력과 생산비 절감, 국내 농가 성장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나절. 전시가 열린 A, B, C, D관을 모두 찾았다. 모든 걸 세밀히 보려면 족히 열흘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더욱이 이번 푸드위크는 여느 전시와는 또 달랐다. 그렇게 다녔지만 지치지 않았다. 줄을 서가며 시식할 여유는 없었으나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새로운 정책을 많이 알게 돼서 그럴까. 아니면 앞으로 식품산업을 엿볼 수 있어 그럴까. 음식 대신 지식이 채워졌지만 못지않게 기운이 솟았다. 확실히 올해 푸드위크 주제처럼 내 삶에 변화를 준 듯 싶다. 무엇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놀랄만하게 발전하는 식품산업에 기대가 된다.